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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살고 있는 토끼


 벽을 물끄러미 보노라면, 벽지에 새겨진 온갖 무늬들이 구름처럼 갖가지 모양으로 바뀌는 것을 겪을 수 있다. 처음에 그것은 어떤 특별한 모양을 갖추고 있는 게 아니다. 보는 이의 눈이 그것을 보는 것이다. 그가 본 것들이 역사와 문화에 의한 세뇌 효과로 나타난 것이라 해도 자연스럽게 겪을 수 있는 형상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눈은 머릿속에 겪은 만큼의 형상을 새겨 놓고, 밖으로 던질 때마다 이런 방법, 저런 각도로 뒤섞어서 우연한 모양을 다시 감각한다. 마치 벽을 마주하고 앉아서 지구처럼, 우주처럼 커질 때까지 끈질기게 점을 응시하며 자기 세계의 어떤 모양들을 잇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사물은 특별한 모양을 만드는 형태소가 될 수 있다.

 형태를 깊이 살피는 사람들 중에서 그 형태들이 본디 가지고 있던 형질을 가볍게 다루는 사람은 없다. 형상을 넓게 더듬은 사람들 중에서 그 모양의 원천이나 다양한 변형 가능성을 살피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겪는 모양에 대한 갖가지 경험과 이것을 연구하고 사례집을 만들어 기정사실화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상상력보다는 연상력에 기댄 이야기로 문제를 풀어간다는 것이다.

 동양의 고전이 그랬고, 서양의 현대가 그랬듯이, 형상과 생각의 관계는 문화를 짜는 중요한 갈래의 하나이다. 그로부터 예술이 나눠지고, 예술가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예술가는 눈에 보이도록 형태를 만들거나 눈에 보이는 형태를 다른 모양으로 보이도록 하는 존재가 아닌가. 악마를 물리치는 데에 필요한 형태나, 착한 존재를 구현하기 위한 형태는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예술가는 연상력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존재라 할 만하다. 거꾸로 보면 어떤 예술가도 연상력의 풍부한 자극을 피하기 어렵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추리할 수 있는 능력의 크고 작음을 따지기에 앞서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게 연상이라면, 연상한다는 것은 예술의 기초적인 단계이자 표현의 첫 걸음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이따금씩 이야기의 얼개를 짜는 데에 필요한 분야로서, 손꼽는 현상학적인 생각들을 따질 때 생긴다. 머릿속에서 밖으로 나와 사물과 형상들에 부딪고 다시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모양과 생각, 그리고 머릿속에 없었지만 밖으로부터 들어와 생기는 새로운 모양과 생각들은 주로 현상학의 투사에서 다루는 방식인데, 이것이 연상과 밀접하다. 여기서 밖으로부터 침투하여 생기는 모양이나 생각들조차, 주체(사람)의 경험을 잣대로 하여 만들었음을 문제 삼는다. 노준진의 조각품이 세상의 문제의식을 껴안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이러한 방향에서 볼 필요는 있다. 그의 형상들은 그의 어떤 경험들과 연관된 것이다.


 조각가는 짜임새나 생김새를 끄집어내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들의 시간은 곧 노동의 시간이다. 망치를 들고, 용접을 하면서 그들은 그들이 계획한 짜임새와 생김새를 드러내는 데에 충분한 노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예술 행위는 상상력보다 연상력을 펼치는 과정과 아주 가깝다. 수리적인 훈련이나 디자인의 감각을 꾸준히 기르는 것도 관계가 깊다.

 물론 이것을 알았더라도 이것만으로 조각품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보는 것만으로 끝내기 아쉬운 미련이 조각품에서는 더욱 특별하다. 쪼고 깎은 돌이나 나무가 거기 발 앞에 놓여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감상의 여분을 채우기는 더욱 어렵다. 작업복을 여미고, 신발 끈을 단단히 묶으며, 입마개를 챙긴 뒤, 그의 팔뚝에 불끈거리는 힘줄이 꿈틀거릴 즈음의 조각가를 연상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전시장에 놓인 조각품의 얌전한 분위기 때문이다. 만일 조각품에서, 돌가루와 톱밥으로 머리카락의 뿌리까지 하얗게 바랜 조각가의 그을린 표정과 살갗을 읽었더라도 조각가가 선택한 재료들에 대한 관심이 모자라면 보는 이의 눈은 조각품 속에 담긴 것을 찾아내기 어렵다.

 노준진의 조각품을 보고, 노준진이 선택한 재료, 노준진이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와 같다. 이러한 생각은 감상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그가 연상 훈련에 땀 흘렸다는 사실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일이다. 그 역시 조각품의 분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재료를 왜 선택하였고, 그로부터 무엇을 만들고자 하였는지에 관한 사실은 조금 더 차분하게 살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가 젊다는 사실은 보는 이를 안심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들의 눈앞에 펼쳐진 조각품들이 많은 구설수에 오른다 해도 전시는 유쾌한 경험이 될 것이다. 보는 이들은 그의 조각품을 본 대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노준진은 동물 형상으로 끝을 볼 생각이 없다. 앞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의 동물들이 그의 머리와 마음, 눈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것은 주마등에 비춘 세상처럼 온갖 사물과 형상의 하나일 뿐이다. 그가 주재료로 쓴 오석에 대한 가치도, 지금 발견한 형상들에 알맞기에 선택한 재료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보는 이들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 그가 선택한 오석의 이름값이나 특성이 그가 만든 모양들의 생김새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산뜻한 느낌 정도의 이야기는 가능하다. 자연의 돌과 형상의 어울림을 자연스럽게 느낀다면, 노준진이 많은 돌들과 뒹굴었기에 자유로운 재료 선택을 하였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노준진은 자연성을 찾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가 말하는 자연성의 개념이 얼마만한 크기로, 얼마마한 너비로 짜인 것인지는 자세하게 알 수 없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가 찾는 자연성이 막연한 것이라도 문제될 것은 없으니 굳이 따질 일은 아니다. 그가 자연성을 찾는 작업에 평생을 바친다면 그때 다시 따져도 될 일이다. 오늘 그의 방향들과 그가 낼 많은 결론들은 다른 낱말이기 때문이다.


 맨 처음 본 작품이 달팽이였고, 그 다음 작품이 거북이였다. 두 조각품이 눈에 선뜻 들어온 것은 달팽이와 거북이의 등에 달린 돌의 무게가 무척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흔한 소설이나 시구에서 읽은 삶의 애틋함이 느껴졌다고 보아도 맞는 말이다. 자연의 돌로부터 다듬은 형상들이 자유롭기는커녕 오히려 자연의 돌에 깔려 움직임조차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눈에 선뜻 들어온 그 형상들을 다시 보니, 달팽이와 거북이는 그런 존재들이다. 무겁고 느린 걸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이야깃거리이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이것이 그가 찾은 자연성의 성과일 듯하다.

 노준진의 조각품을 모두 모아 놓고 보면, 무거운 돌에 깔린 것 같은 형상들과 달리 날아갈 것처럼 경쾌한 형상들도 여럿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그가 생각하는 자연성이 만일 여러 형상들이 가진 성격의 어울림에서 오는 것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낱낱이 보면 자연의 돌에서 얻은 형상들은 인공적인 자연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가 말하는 자연성은 결코 실현할 수 없다. 그가 면벽수도승처럼 자연의 돌을 마주하고 한낱 점에서 세상을 보듯이 자신을 덮친 형상을 찾은 것이라면, 그 또한 자연의 영감이 아니라 그가 겪고 그의 머리와 마음에 새긴 세계의 방향성이 이끈 결과라 하는 게 맞다. 이러한 생각을 부추기는 중요한 계기는 하마를 만드는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 있다. 물에 있든, 땅에 있든 보는 이의 눈에 그것은 느릿하게 헤엄치는 풍경이자, 공간의 느낌으로 다가선다. 땅에 박혀있는 것이라 해도 그 모습은 홍세섭의 오리 그림과 같은 움직임을 갖고 있으니 풍경이나 공간을 느낄 요소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볼 때, 물에 젖은 오석의 빛깔이 주는 느낌을, 돌가루에 묻혀 있는 하마, 수달, 그리고 달팽이에게서 더 진하게 느낀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시각과 지각의 반응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노준진의 조각 과정을 들여다보는 또 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다. 그의 조각품들이 어떻게 어떤 생김새로 놓여 있든 그 결과의 재미는, 그가 자연의 돌에서 끄집어낸 형상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재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시지각의 반응과 형상의 관계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노준진이 갈고 닦은 모양들이 뿜어내는 평화로운 자연 환경의 느낌들은 그의 형상들을 만듦이 아니라 태어남에 비유해도 허락할 것이다.

 두 팔을 크게 벌려도 다 껴안을 수 없는 바위, 빛깔과 성질이 다른 여러 돌들이 그의 과제 속에 들어있는 것을 보았지만, 거칠어지기 시작한 살갗만큼 조각 행위의 재미가 깊어지는 것을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느긋해진다. 어떤 동물이 놓여 있고, 어떤 형상이 전시장에서 뛰어놀고 있는지 하나하나의 이름을 헤아리는 것은 보는 이들의 관심거리 중 하나이니, 이 글에서 그것까지 두루 새기지는 않겠다. 그 동물들이 필연적인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가장 궁금한 것은 자연을 닮은 인공적인 생김새들 속에서 그가 좇은 자연성이 어떻게 풍기는가이다. 이 모든 게 문제가 아니라면, 의인화한 자연성일지라도 그의 마음이 가꾼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노준진의 작업에 관한 여지는, ‘자연을 겨냥하고 자연의 돌에서 툭 튀어나온 무엇을 발견하여 형상을 만들었다’는 그의 이야기와 그가 자신의 목표에 의해 쉬이 지치지는 않을 것이란 인상에서 찾았다. 잔뜩 긴장한 그의 힘줄과 팔뚝도 그것을 아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그가 전시를 통하여 발견할지도 모를 자연성의 위배라는 모순과 전시장에 나온 형상들의 꿈틀거림이 그를 어떻게 몰아붙일지 즐겁게 바라볼 수 있다. 노준진의 조각품들이 야생을 위한 자연성을 담았거나 숲에서 발견한 발자국을 좇는 게 아니어도 좋겠다는 생각은 재미있는 감상에서 얻을 일이다. 그의 작업은 구름이 만든 형상이 아니라,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바뀌는 형상들을 좇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달 속에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고 말하고 있을 때, 그는 달 표면에 방아를 찧는 토끼를 새길 것이다. 그가 새긴 방아 찧는 토끼의 생김새가 그의 모든 가능성을 막았다면, 그것을 해결할 사람은 그 자신뿐이다.


이기만 / 평론가, 성균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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