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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준진 彫刻展

돌, 劃으로 거북을 깨우다.


거기에는 생명이 있고, 생명을 위한 물길의 발원지가 있다. 거북은 발원지를 찾는 여행자가 된다. 거북의 걸음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함께한다. 무거운 삶의 무게위에 경쾌한 흔적을 싣는다. 흔적은 바람이 되고, 즐거운 기분이 된다. 세상의 처음에서 세상의 끝을 향하는 철학적 질문에 응답하는 시작점이다.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이 된다. 흔적에는 아주 오래된 부족에서 전해지는 전설을 담는다. 

오늘을 참는 자신의 모습을 대견해 하며 그것에 대한 자신의 자긍심을 전설로 풀어낸다. 온갖 감정을 실어 밤새 고민하며 쓰는 사춘기시절의 붓질과도 같다. 편지를 위한 붓에 먹을 흠뻑 담는다. 머금은 붓은 거북의 모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직한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다. 자신의 모습을 만든다. 세련되고 도회적인 모습보다는 다소 뭉툭하고 다소 거친, 그러면서 감정이 풍부한 모습으로 구현된다. 수많은 연습과 반복되는 감정표현이 숨겨진다. 한 번에 써내려간 인상의 표현이다.  


작품 <거북을 깨우다, 201111-08>을 보자. 어디엔가 역사를 품은 암석이 있다. 암석은 자연을 품고 세상을 담은 채, 녹색의 자연과 계절의 변화에서 자리를 지켜왔다. 새벽빛이 돌을 깨운다. 웅크린 존재는 누구도 알지 못했던 모습으로 숨을 쉰다. 새벽을 들이키며 발을 딛는다. 세상을 여는 붓질의 시작이다. 먹을 힘껏 머금은 붓은 거대한 획(劃)을 만든다. 획은 그어지고 만들어지며, 자르고 쪼개면서 새로운 희망을 형성한다. 그리고는 천천히 쉬지 않고 걷는다. 바람을 싣고 달리는 새벽빛과 같다. 작품은 조각이기에 만든다고 하지만 노준진의 작품에는 긋는다는 말이 더 합당하다. 그의 획은 생명 자체이며, 생명을 유지하는 도구가 된다. 시작과 마지막 을 포함한 획은 정점이며, 삶의 완성에 이르는 이상향이다. 획을 짊어진 거북은 우직함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마음에 담겨진 체계 속에서 자신과의 조화를 대상으로 자리한다. 있는 그대로의 접근이다. 

특별한 기교가 없는 덩이와 육각형 석조위에는 화려한 생명이 자라면서 자연의 모습이 형성된다. 그렇다고 특정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달필가가 써내는 먹물 흠뻑 머금은 붓질이 지나듯 하다가도 우직하거나 투박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이중구조가 만들어진다. 애정과 친구사와도 같은 삶의 정신과 현실의 모습을 대변한다. 철학과 현실의 이중주가 된다. 획이라고 하는 동질성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사회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노준진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누구에게가 그러하듯 보통과 특별이 있다. 주어진 상황에 초연할 수 있는 이성과 예견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공존한다. 여기에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정신세계가 있다.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시작된다. 거북위에 살아있는 획에는 순리를 지키려는 온순함과 역경을 감내하면서 성취하려는 분출의 힘이 있다. 이중구조의 조각 작품에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자신의 주변에서 형성되고 응집된 살아가는 기질로 완성된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거기에서 자신에 주어진 삶을 고찰하고 이해한다.  


거북이 세상을 향해 말을 건다. 들어주는 이 없어도 무던히 말을 거는 거북은 어느새 세상의 한 켠을 차지한다. 거기에서 생명을 만들고 미래를 준비한다. 한편으로 거북은 지금의 거북일 뿐이다. 변화와 적응, 진화를 준비하는 변화무쌍한 마술사가 된다. 이전에는 달팽이 이거나 곰이거나 산양이었다. 자신의 예술가적 삶을 위한 변화일 뿐이다. 그것은 그가 놀이 삼는 돌덩이와의 술래잡기다.  

돌덩이와 술래잡기를 시작한다. 숨어있는 동무의 옷자락을 핑계 삼아 얼굴을 만들고, 머리카락을 도구삼아 옷을 입힌다. 숨어 있는 친구를 찾기 장독대에 다가가거나 장독대를 치우지 않는다. 친구를 감추고 있는 장독대는 어느새 연필이 되고, 먹물 머금은 붓이 된다. 거기에는 이미 생명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가끔씩 자신이 숨는다. 돌덩이 뒤에 숨어 있으면 어느새 새로운 돌은 조각가의 뒤에서 묵묵히 바라본다. 들켰다는 당혹감 보다는 술래로서 질료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해야하는 부담감이다. 그래도 그들은 거기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사이가 된다. 


노준진은 조각이 지닌 질료와 매체의 전형성을 따르면서도 현대의 시각예술로 표현되는 감흥과 교감을 위한 독특한 성질을 발현시킨다. 밀가루 반죽을 만지는 기분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의 접근이다. 딱딱하고 굳어있는 매체에서 회화적 감흥을 발견한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에 대한 본질파악을 위한 접근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의 가치이며 예술의 가치이다. 물질 구조에 대한 설명보다는 시작점과 끝점을 하나로 이어내는 예술로의 표현이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자신이 지닌 본래의 순수성을 확보하는 범위에서 시선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사상과 내재된 삶의 접근이다. 거북은 여전히 어딘가로 향한다. 현재에 머물지 않은 발전하는 정신성에 대한 현대적 의미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미술평론가 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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